우리 사회가 실패를 대하는 자세
간만에 좀 크게 손실을 입었다. 몇 달치 수익이 날아간 듯하다. 전체 자산 대비로는 작지만, 그 심리적 충격은 적지 않았다. 종목은 코스닥의 "세실"이라고 천적을 이용한 방제사업을 영위하는 회사다. 회사를 선택할 때, 주로 살펴보는 소유주의 지분율과 재무제표의 건전성, 사업의 안정성으로는 찾기 힘든 숨은 내용이 많았던 것 같다.
하긴 오너가 최선을 다해 숨기는데.... 일개 개미인 내가 어찌 알수가 있겠나... 10년 가치투자로 유명한 이채원씨의 한국투자벨류자산운용도 수 십억의 손실을 입은 듯하고, 그 밖에 다른 기관투자가와 외국인 투자가들도 손실이 상당한 듯하다. 거기에 비하면, 내 손실은 새발에 피..... -..- ;
그렇지만 하여간 속은 엄청 쓰리다.. 물론 신이 아닌 다음에야.... 거래가 100% 성공으로 마무리 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런 손실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분명히 어떤 경우든 그 손실를 피할 수 있는 아니면 크게 줄일 수 있는 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충분히 인지되는 순간 말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 순간을 애써 외면한 흔적을 매 번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실패는 계속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종목 선택과 거래운영의 실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실패를 인정하는 자세인 듯하다.
종종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못하고 오기를 부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결과는 더 나빠지고 그와 똑같은 실패들을 다시 되풀이 할 확율을 높이게 된다. 반대로 그 실패를 정직하게 인정하는 경우, 다음 번엔 그와 같은 종류의 실패를 되풀이 할 확율을 낮추게 된다.
이것이 십여년동안 주식 거래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 가장 중요한 거래의 기술이라면 기술이다.
이것은 다른 개인사업이나 자영업에도 적용되는 항목이다. 그리고 그 보다 큰 영역인 사회전체에서도 그 내용은 동일하게 이해될 수 있다. 단 한 번의 시도가 대단한 결과를 보여주는 성공으로 나타날 수 있는 확율은 아주 희박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사실 그 성공이라는 것 자체도 그 의미의 경계가 불분명하긴 하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 실패하지 않은 성공은 없다는 걸 인정하려 하지 않는 " 경향이 강하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집단적 히스테리를 만들게 되어, 성공에 대한 병적인 집착과 실패에 대한 극단적인 과잉반응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천민자본주의가 한국사회에서 그 천박함을 더욱더 드높이고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한 번의 실패가 모든 것을 잃는 것으로 귀결되는 사회, 그 때문에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수 없는 사회, 그것이 지금의 한국 사회인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체면치레의 폐습과 결합된 자신의 실패기록을 숨기기에 급급한 사회적 분위기는 우리사회 최악의 경제적 폐단으로 연결된다. 실패의 경험이 공유되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전체적으로 발생하는 반복되는 실패비용은 그 규모를 계속 증가시킨다. 그와 함께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눈만 뜨면 계속되는 실패에 대한 배려가 없는 이러한 과잉경쟁과 승자독식, 패자소멸의 사회적 압박감은 사회를 더욱 각박하게 만들어간다.
불특정 다수에 대한 즉흥적 증오폭력과 살인의 증가, 어린 학생들의 투신과 가족 단위의 자살 등등 몇 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증가된 수많은 사회적 부적응 사례들은 실패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없음을 광범위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사회가 이대로 사회적 스트레스를 키우기만 하고 해소하지 못하는 방향으로만 흐른다면, 중학생이 동급생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두른 오늘 있었던 사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일본에서 수 년전 중학생이 초등학생의 머리를 잘라 초등학교 교문에 던져 놓았던 것과 같은 극단적 참극이 우리사회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극단적 참극을 예방 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법은 성장을 위한 경쟁을 유도 하더라도 그 와중에 발생하는 실패를 부드럽게 받아주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확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무한경쟁의 사회적 시스템하에서 병들어가는 나이 어린 학생들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잠시라도 쉴 수 있는 안식의 심리적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국가주도의 사회복지시스템을 강화해야 하는데.... 지금으로썬 민간이든, 국가든 그것을 기대할 수가 없다는 것이 가장 걱정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