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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그늘 (김동춘 저)

Nomades 2010. 7. 31. 09:28

 

역사를 바라보는 방법 ...

 

 

이 책의 저자인 김동춘 교수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언제나 궁금했던 우리의 과거사들을  어떻게 봐야 하는 지에 대한 적절한 방법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습니다.

 

그는 이광수의 변절, 이승만의 집권, 친일파의 재기, 한국전쟁의 발발, 군부의 쿠데타 등과 광주 항쟁의 발생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이 책에서 세히 설명해주고 있는데요.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역사적 사건의 면을 볼 수 있는 방법과 능력을 나누어 준 것이 이 책의 진정한 가치가 아닌가 합니다. 

 

어떤 사건에 대한 관찰과 평가를 내리는 과정에 있어서 관찰자의 입장에서가 아닌 관찰 대상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노력을 꾸준히 견지하는 것이 그 대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은 알려줍니다.

 

일례로 일제 식민지 시절의 이광수를 비롯한 반제 민족 운동의 지도자급 인사들과 지금의 변절 정치인들을 보면서, " 저들은 왜 변절자라는 이름은 택했을까?" " 왜 변절을 해야 했을까? "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는데... 그러한 궁금증을 갖고도 그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은, 자신이 그들의 입장이 되려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배척하는 입장에서만 그들을 바라 봐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자신은 분명히 언제나 객관적으로 사고 한다고 자신했지만, 실제로는 너무 나도 한 쪽으로 치우친 편협한 시선이였다는 걸 알게 되는 겁니다.

 

이 책은 우리 근대의 모습을 바로 보는 것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올바른 역사 인식의 방법을 배울 수 있게 해주고, 피해자의 입장에서만 혹은 가해자의 입장에서만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결코 역사를 올바로 해석 하는 시선이 아니라는 점을 이 책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아래의 내용은 이 책의 중요 내용을 발췌한 것 입니다.

 

P. 23

 

국가가 공공의 이름으로 통제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것은 곧 사회 내 특정 세력이나 대표자가 국가의 이름으로 다른 세력을 억압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거꾸로 지배세력의 사회적 기반과 그 정당성의 기반의 허약함을 나타낸다.

 

P. 31

 

2차대전 후 군사독재국가에서는 통상 정치적 억압과 자본주의적인 경제발전이 함께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들 국가에서 체제유지를 위한 안보의 논리와 자본주의적인 금전의 논리는 모두 법 위에 존재해 왔다. 따라서 법은 재벌이나 관료 등 지배집단에게는 거의 적용되지 않았다.

 

P. 43

 

공적 폭력행사는 그 자체가 사회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위기에 처한' 지배계급이 법의 지배라는 근대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탱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전근대적인 도덕률 대신 법의 지배 원칙이 중심에 자리잡고 있으나, 그것은 끊임없이 금전의 논리와 폭력의 논리, 즉 약육강식의 원리에 압도당하게 된다. 전쟁을 위한 동원과 국가의 폭력행사는 사실상 소유권 및 강자의 권리를 배타적으로 옹호하는 것을 의미하며, 사회적 합의의 절차와 응집성 확보를 어렵게 하고 결국 사회 전반에 무규범 상태를 초래한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무규범 현상은 지배계급의 탈법, 즉 무규범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폭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으며 사회적 동의가 박약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무규범과 소유권 절대주의, 공적 폭력과 사상통제는 하나의 고리를 이루면서 냉전질서하 분단국가의 질서유지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한국에서는 아직 온전한 의미의 근대적 민족국가가 수립되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말해 분단국가는 '미완성'국가임을 실증해 주고 있다. 오늘날 사회란 곧 정치단위인 국가와 동일하다고 본다면, 근대적 국가의 부재는 결국 '사회'의 부재를 말해 주는 것이다.

 

P. 51

 

자본주의 사회 혹은 시민사회는 자본주의적인 생산, 계약, 거래 관계에 부응하기 위해 가족의 경제적 기능을 사회에 양도하고 그 대신 개인으로 하여금 가족유대, 가족복지의 테두리를 벗어나 새로운 사회 구성원, 자치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요구한다.

 

P. 87

 

신 가족주의는 국가와 가족을 매개해 주는 사회조직이 전혀 없이 가족이 국가, 즉 관(官)과 수직적인 관계망을 형성하게 되는 조건에서 발생한다.

 

P. 106

 

한국의 지배체제는 국가보안법으로 상징되는데, 국가보안법은 그 모태인 일제의 치안유지법이 그러했듯이 근대 개인주의, 민주주의의 윤리적 기초를 갖고 있지 않다. 법의 정신, 근대국가의 시민도덕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의사표현과 참여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사상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곧 시민사회에서 도덕률이 형성될 수 있는 기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결국 국가보안법의 논리적 기초는 억압, 감시, 통제로 상징되는 국가폭력 바로 그것이다.

 

P. 109

 

지금까지 한국의 관료, 정치가, 대자본가들은 국민들에게 도덕적인 모범을 보여왔다기보다 오히려 그 반대로 도덕적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민들은 그전 정권과 연류된 이들의 비리와 부정을 접해야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민들은 한편으로는 그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들 지배집단의 행태를 닮아가게 된다. 사회 전체가 무규범 상황에 이르는 것이다. 이 점에서 사회의 일반적인 상황을 가르키는 무규범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국가도덕의 부재, 즉 지배집단의 도덕성 결여에서 출발한다.

 

국가의 도덕적, 윤리적 기반이 취약할수록, 즉 그람시가 말한 것처럼 지배집단의 헤게모니적 능력이 취약할수록, 국가는 한편으로는 억압적인 기구를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물질적 보상을 통해 지배질서를 유지하려 한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도덕적 기반이 허약한 정치권력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배수단은 물질이다.

 

P. 111

 

한국에서는 정치의 논리가 법의 논리를 압도해 왔고 시장의 논리를 압도해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정치의 논리와 돈의 논리가 법과 도덕의 논리를 능멸해 온 것이 한국 현대사였다.

 

이것의 일차적인 원인은, 한국의 경우 국가 형성과정에서 구식민지 관료와 경찰이 신생 한국의 지배집단으로 또 다시 등장하였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비정상적인 정치 상황-즉 남북한의 대결과 친일세력의 재등장, 좌익의 완전한 제거-을 빌미로 해서 일제가 남기고 간 귀속재산을 불하받고 이후에도 정치권력의 힘에 기대어 자본축적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분단이라는 상황이 이들의 이윤추구 행동을 자본주의 체제 유지 차원에서 옹호하였다는 사실에 있다. 정치의 논리는 곧 힘의 논리이며, 힘의 논리는 돈의 논리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시장논리가 국가와 개인, 국가와 시장을 매개하는 사회의 어떤 공간, 즉 '도덕'의 공간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P. 120

 

현대 한국의 신가족주의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국가와 가족 사이를 매개할 수 있는 사회조직이 해체되고 개인과 가족이 국가, 즉 관과 수직적으로 관계맺게 되는 조건 위에서 형성되었다. 이런 신가족주의가 행위의 준거로 작용하는 상황에서는, 도시는 물론 농촌지역사회에서도 협동과 공동체성은 발휘하기 어려워진다. 한국의 민중들이 갖는 이기주의와 이중성은 사실상 일신의 생명을 도모하기에도 급급한 식민지지배, 한국전쟁이라는 극한적인 정치상황이 만들어낸 것이지만, 이제 이것은 자본주의적인 경제질서와 맞물려 한국식의 무규범성, 무도덕성을 만들어내었다.

 

P. 125

 

'사회주의'붕괴와 신자유주의 물결을 탄 자본과 권력의 반격은 민족과 사회에 헌신하고자 하는 인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 밖에 없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도덕공동체를 해체시켰고,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가족의 문제에만 신경을 쓰면서 '사회가 없는 듯이' 행동하는 '규범부재', 편법과 편의, 파렴치한의 세상을 만들었다.

 

P. 127

 

오늘 한국사회에 만연한 무도덕성과 무규범성이 한국의 독특한 근대성, 즉 일제 식민지 경험, 한국전쟁을 통한 분단된 국가형성과 냉전질서하의 천민적인 자본주의 형성과 연관되어 있다면, 이러한 도덕적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일차적인 길은 우선 국가를 바로 세우는 일에서부터 출발할 수 밖에 없다. 바로 국가의 도덕성을 수립하는 일, 즉 국가계급인 정치가와 관료들이 도덕적으로 될 수 있도록 밑으로부터 강제하는 일, 나아가 정의를 위해 투쟁한 세력이 정치와 사회를 이끌어가는 세력이 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이다.

 

P. 162

 

한국에서의 학력, 즉 '일류학교'의 '간판'은 단순한 문화화폐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다른 대안이 '차단'된 상황에서 남한 자본주의 질서에 적극적으로 순응하는 다른 방식이었다.

 

P. 173

 

한 사회의 특징을 "사회이동을 어떤 방식으로 인정하는가에 달려있다."고 말할 경우, 한국은 남북한 분단상황으로 좌익은 물론 집합주의적인 밑으로부터의 정치화운동이 차단됨으로써 오직 국가공인의 학력 추구를 통해서만 계급이동이 이루어지도록 유도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P. 194

 

감시당하고 의심받는 국민은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다. 신민의 태도가 몸에 배도록 강요된 국민들에게 '주체'로서의 자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가가 국민의 일상적 생활세계에까지 침투하는 사회에서 '사적인 영역'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게 되지만, 이는 역설적이게도 사적인 것이 곧 국가적인 것의 내부에 무한정 침입하는 상황을 불러온다. 이러한 국가에서는 의심하고 감시하는 주체인 지배층 역시 자신도 감시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기실은 이기적인 존재로 행동 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국민들은 생존을 위해 더욱 기회주의적이고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사실 힘의 논리를 추종하는 것이며, 국가에 대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충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바로 '개인'의 권리를 무시하고 '시민'이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거의 남겨놓지 않는 국가주의의 비극적인 귀결이다.

 

P. 200

 

이제 우리는 '국민'이라는 공동체를 절대적인 것으로 보기보다는 한국의 독특한 근대과정에서 형성된 상대적인 것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P. 242

 

20세기 초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각국의 정치사회사상은 일차적으로는 세계자본주의와 그 불균등발전에 대한 지적대응의 결과물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P. 247

 

한국에서 '반봉건' 혹은 '개화'와 자유로운 개인의 권리를 바탕으로 한 '근대 민족국가'의 건설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았다. 후자를 위해서는 일제에 대한 전면적인 투쟁이 요구되었으나, 전자를 위해서는 일제의 통치를 용인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P. 253

 

현대 한국에서의 '자유'는 토크빌이 말하는 시민적 자유, 즉 공공의 이상을 고려하지 않는 사적 이익의 극대화와 동일시되었다.

 

P. 255

 

한국의 자유주의는 사회에 대한 국가의 군림과 억압, 경찰력과 군대의 지배가 전면에 등장하는 것을 받아들였으며, 이들과 협력하여 일정한 이익을 챙길 수 있다고 기대하였다. 한국 엘리트들은 이러한 형태의 반공자유주의를 자유민주주의라고 강변하였고 오늘도 여전하다.

 

P. 270

 

사회주의 이론이 노동자나 생산계층으로 확산되는 것이 차단됨으로써 사회주의는 대체로 지식인과 학생들의 관념으로 왜소화되었으며, 사회변화의 실질적 동력으로 작용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 '현존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원론적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견지하던 이들 소장 지식인, 학생들 일부는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을 긍정적으로 보는 신판 근대화론으로 회귀하였고, 또 일부는 탈근대화의 철학적 담론으로 흡인되었으며, 일부는 환경,

여성, 문화 운동 등 새로운 사회운동에서 전망을 찾아보려는 쪽으로 급격히 경도되었다.

 

P. 273

 

한국에서는 서구 계몽주의의 전통을 이어받은 어떤 근대적 사회사상도 자기완결적 체계를 갖춘 독자적 사상으로 존립하기보다는 민족주의와 결합됨으로써만이 생명력을 얻을 수 있었고 그 자체로는 민족주의의 권위와 도덕성을 압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P. 280

 

현대 한국에서 사상의 빈곤은 바로 분단으로 인한 반공주의의 득세에 의해 조건지어졌다. 하나의 사상이나 이념이 될 수 없는 반공주의의 위세 앞에서 일체의 사상적, 정책적 토론은 자취를 감춘 것이다.

 

사상적 측면에서 본 한국 근대의 모습은 무엇인가? 그것은 전통적인 유교적 도덕률의 철저한 파괴이자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사상, 도덕, 가치체계의 부재상황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국가에 의한 강압적인 통일성은 뒤르켐이 말하는바 기계적 연대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통제는 사상의 부재, 나아가 무도덕적 가족주의, 무규범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것이고 사상과 이념의 부재, 이기주의로 인한 무질서와 무원칙, 도덕적 혼미는 곧 국가에 의해 억압당한 사회가 거꾸로 국가에 복수하는 것이다.

 

인간의 해방을 위한 새로운 진보사상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한국은 그간 우리를 짓눌러온 '수동적 근대성'에서 벗어나 '적극적 근대성'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에 만연해 있는, 국가정책의 원칙과 비전 부재, 기업윤리의 실종, 학교교육 및 사회교육 지침의 부재, 사회윤리와 도덕적 기준의 부재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P. 290

 

민족주의는 인종, 언어, 문화 등 초역사적인 공통의 정신적 기반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그것은 시장경제를 뒷받침하는 정치당위를 결집하거나,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인한 정치적, 경제적 억압을 극복하려는 정치운동으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문화와 정치는 민족주의의 두 기둥이며, 대부분의 경우 민족주의는 민족국가의 형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P. 295

 

국가나 민족이라는 정치단위가 자본주의 발전과 더불어 점점 약화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오늘 국제화 국면에서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기보다는 어느 정도 예견 가능한 것이었다. 독일의 통일, 유럽과 구소련 지역에서 민족주의의 발흥은 다름 아니라 냉전체제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힘의 공백 속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이것은 민족주의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P. 298

 

그러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전환기나 해방 8년 시기의 전환기에 우리 민족은 대외적 독립을 추구하는 세력과 대내적 민주개혁과 국민형성을 추진하는 세력이 언제나 불일치하였다. 이것은 자주적이고 통일된 민족국가 형서의 실패로 귀결되었다.

 

P. 314

 

민족주의는 주체적, 역사적 경험과 세계자본주의 발전이라는 객관적인 조건이 결합되어 나타난 것인데, 그 구체적인 성격은 역사발전의 시기, 국내의 계급관계, 국가간 대립관계 등에 따라 상이한 양상을 보인다.

 

P. 346

 

민족주의는 근대 자본주의의 불균등한발전으로 인한 배척과 차별화, 근대적 질서와 서구문명에의 편입과정에서 겪은 좌절 혹은 실패의 산물이다. 민족주의 현상은 이러한 불평등한 정치, 경제 질서를 정당화시킬 수 없는 데서 촉발되어서, 언어, 문화 등의 상징 및 공동체 지향과 결합되어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P. 367

 

민족주의는 세계체제하에서 '패자의 전략'이라는 극단적 평가도 있지만, 민족주의는 운동세력 내적인 단결력을 고양시킬 수는 있었으나 그것을 탄생시킨 원인, 즉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모순의 근본적인 해결에는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80년대 남한 민족주의자들의 한계는 폭력과 이데올로기의 독점기구로서, 시민적 삶의 조건을 좌우하는 가장 일차적인 정치적인 단위로서 그리고 최고 최대의 교육자로서의 남북한 국민국가의 실체를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에 대해 분명하게 정리하지 못한 데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들은 북한 역시 하나의 국가로서 체제존립의 기본적인 요구를 안고 있다는 점과, 북한의 주체사상과 민족해방의 논리라는 것은 체제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일종의 지배이데올로기라는 점, 그리고 민족적 일체감이라는 것도 역사과정에서 끊임없이 변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